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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6월 15일
기원전 586년, 바빌론 왕국은 예루살렘을 정복하고 솔로몬 성전을 파괴한다. 역사학자들은 이 시점을 까지를 제1 성전 시기라 부르며, 이 후를 바빌론 유수 시기로 부른다. 바빌론 유수는 538년 까지 이어졌고, 기원전 516년에 다시 예루살렘 성전을 지어서 이를 제2성전 시기라고 한다. 이 제2성전은 서기 70년에 로마군에 의해 파괴된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열아홉째 해 오월 칠일에 바벨론 왕의 신복 시위대장 느부사라단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을 불사르고 예루살렘의 모든 집을 귀인의 집까지 불살랐으며" (열왕기하 25장8절) 바빌론은 예루살렘을 점령해 왕궁과 성전, 그리고 귀족들의 집을 불사른다. 당시 유다 왕 시드기야는 야밤을 틈 타 도망치려하다 잡혔다. 시드기야 왕은 눈을 뽑혀 장님이 된다. 바빌론은 시드기야의 눈을 뽑기 전에 눈 앞에서 아들들을 살해한다. 장님이 되기 전 마지막 세상 모습이 아들들이 죽는 모습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그들이 왕을 사로잡아 그를 립나에 있는 바벨론 왕에게로 끌고 가매 그들이 그를 심문하니라 그들이 시드기야의 아들들을 그의 눈앞에서 죽이고 시드기야의 두 눈을 빼고 놋 사슬로 그를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끌고 갔더라" (열왕기하 25장) 유대 사람들은 바빌론에 끌려가 생활을 하게 되는데, 이를 시편은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설움에 찬 시편137편과 달리 예레미야서는 이런 구절이 있다. "유다의 왕 시드기야가 바벨론으로 보내어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에게로 가게 한 사반의 아들 엘라사와 힐기야의 아들 그마랴 편으로 말하되 선지자 예레미아가 현지에서 정착을 하고 행복하게 현지인과 결혼을 하며 생활을 하라고 권한 것이다. 실제로 많은 유태인들은 당시 풍요롭던 바빌론의 생활을 누리고 집을 장만하기도 하고 현지인과 결혼하며 자식을 낳고 살았다. 하지만, 현지화가 되어가면서도 유대인으로의 정체성을 잃지 않았고, 이스라엘의 신을 계속 섬겼다. 이것은 바빌론 유태인 장로들에 의해 유지되었고, 모세5경과 여호수아, 사사기 등이 완성된 것도 이 시기로 추정된다. 신이 어느 곳에나 계신다는 기독교와 달리, 유태교는 신이 특정한 물리적 장소에 존재한다고 믿어 그 곳에서만 제사 등을 지냈는데, 그곳이 예루살렘 성전의 성소이다. 유태인은 종교 의식을 계속하기 위해서 성전이 필요한데, 이미 성전은 무너졌고, 사는 곳은 바빌론이 되어버린 문제에 직면했다. 그러한 현실에 적응하기 위해서 유태교 회당(시나고그)의 개념이 이때 생긴 것으로 추정된다. 기원전 7세기부터 6세기부터 중동지역을 장악하던 바빌론 제국은 페르시아의 강성함에 점차 쇠락하며 영토를 내어주기 시작한다. 5세기에 접어들자 바빌론 지역을 포함한 터키, 러시아 서쪽, 그리스, 이집트까지 포괄하는 페르시아 왕국이 설립이된다. 페르시아와 그리스의 전쟁이 일어난 것도 이 시기이다. (페르시아는 개역개정등의 성경에서 '바샤'라고 불리운다.) 지역의 새로운 주인이 된 페르시아는 바빌로니아와 정반대의 이주정책을 펼쳤는데, 강제 유배된 이주민이, 원하면 원지방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전통적으로 앗시리아와 바빌로니아는 다스리기 쉽게 하려고 지배층을 다른 곳으로 유배시켜 지역지배층을 와해했다. 페르시아는 다스리기 쉽게 하려고 지역 지배층에 대한 유화정책으로 고향으로 돌아가게 한 것이다. 둘 다 목적은 같다. 페르시아의 이 정책은 효과적이었던 것 같다. 페르시아 지배기간동안 반란은 단 한번 밖에 없었으며, 이것은 그리스인들 한 것인데, 이것 조차 페르시아 밖 그리스인들에 의해 조장된 것이었다. 기원전 530년에 페르시아의 사이러스 대왕은 유태인들에게 고향으로 돌아가고, 성전언덕에 성전을 다시 지으라고 허락한 조서를 내린다. (사이러스Cyrus는 대부분 한글 성경에서 '고레스'라고 표기된다. 또한, 원어표기법에 따라 '키루스'가 표준한글에 맞는 표기인데 사이러스 대왕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이르되, 바사 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세상 모든 나라를 내게 주셨고 나에게 명령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참 신이시라 너희 중에 그의 백성 된 자는 다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라 그는 예루살렘에 계신 하나님이시라. 그 남아 있는 백성이 어느 곳에 머물러 살든지 그 곳 사람들이 마땅히 은과 금과 그 밖의 물건과 짐승으로 도와 주고 그 외에도 예루살렘에 세울 하나님의 성전을 위하여 예물을 기쁘게 드릴지니라 하였더라 이를 증명하는 실제 역사자료가 있다. 원통형 진흙 기둥에 쐐기문자로 씌여있는 키루스 2세 실린더가 그것이다. 사이루스 대왕이 바빌론에 있는 '여러민족'들에게 자신의 고향 땅에 돌아가 살수 있도록 명령한 것이다. 대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https://en.wikipedia.org/wiki/Cyrus_Cylinder 실제 사료와 성경 버전의 차이가 흥미롭다. 실제 사료는 여러 민족에게 명한 것인데, 성경에서는 사이러스 대왕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특별히 찬양하며 하나님에게 감동을 받아 유태인에게만 특별히 한 것 처럼 묘사된다. 사이러드 대왕의 조서를 들여다보자. 내가 신을 고향으로 돌아가게 했으니 그 신이 나를 도와줄 차례, 라는 식의 동기가 재미있다. 페르시아의 광활한 영토는 몇개의 권역으로 나뉘었는데, 이는 Satrapies라 한다. 예루살렘이 속해있던 권역의 이름은 Eber-nari 인데, "강건너 땅" 이라는 뜻이다. 페르시아는 이란에서 기원하였으므로 이스라엘쪽은 티그레스 강 건너편인 것이다. 이 Satrapies는 주(洲)의 개념인 medinot(단수 medina) 이 있는데, Eber-nari 권역에는 유다, 사마리아, 이두메아, 암몬 등이 있었다. 익숙하게 들릴 이 이름들은 페르시아 행정구역 시기에 확실히 나뉜 것으로 이때 고착되어 이후에도 계속 쓰이게 된다. 유다(Judah) 혹은 야후드(Yahud), 주디아( Judia)로 불리는 지역은 우리가 익숙한 신약 성서의 무대가 되는 곳으로,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한 지역이다. 사마리아(Samaria)는 그 북쪽에 위치하며, 사마리아 중심에는 같은 이름의 사마리아 라는 도시가 있다. 원래 제1성전 시기에 이스라엘의 수도였던 도시 이름을 따서 지역 이름이 나온 것이다. 같은 이름이 이제는 지역 이름으로 쓰이니 헷갈리지 말자. 이두메아 Idumaea는 유다의 남쪽에 위치한다. 이 지역 사람들은 원래 사해(死海) 남동쪽은 Edom 지역 주민들이 넘어온 것이다. 암몬(Ammon)은 유다에서 북동쪽으로 사해를 넘어가서 위치한다. 이 지역은 유태인 왕족의 하나인 Tobias가 다스리는 곳이다. 유다 지역을 다스리기 위해 페르시아에서 보내진 사람은 유태인으로서 페르시아에 고위직이었던 '느헤미아'이다. 성경 느헤미야서는 이 과정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왕에게 아뢰되 왕이 만일 좋게 여기시고 종이 왕의 목전에서 은혜를 얻었사오면 나를 유다 땅 나의 조상들의 묘실이 있는 성읍에 보내어 그 성을 건축하게 하옵소서 하였는데" (느헤미야 2장) 실제로 이때 지어진 5세기의 예루살렘은 고고학적 증거에 의하면 상당히 작은데, 이는 대부분 페르시아에 정착한 유대인들이 느헤미야를 따라 고향으로 돌아와서 다시 바닥부터 시작하기 보다는 페르시아 삶을 계속 하기를 원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페르시아 정부는 유대지역에 유대 율법을 확립을 돕도록, 기록요원이며 모세5경에 정통한 '에스라' 라는 사람도 보낸다. 바빌론으로부터 돌아온 사람들이 옛 성전을 다시 지어 이스라엘을 재건하던 시기부터 혈통과 정통성을 따지기 시작한다. 이전까지 12부족의 연맹체였던 종교가, '에스라' 사람에 의해서 초기 '유대교'로 탈바꿈하게 된다. 이는 '유대' 지역에 바빌론 유수로부터 돌아온 '유대' 부족 사람들의 종교라는 것이다. 기원전 586년 이전의 이 지역의 종교(이스라엘 지역종교)와 이후의 종교(유대지역 종교)의 차이를 유념해두자. 갑자기 족보가 얼마나 강조되었는지는 에스라 8장에 잘 나타나있다. "아닥사스다 왕이 왕위에 있을 때에 나와 함께 바벨론에서 올라온 족장들과 그들의 계보는 이러하니라..." (에스라 8장) 에스라는 사람들을 모두 광장에 모이게 한다. 마침 비가 내려, 비를 맞고 떨면서 무슨 발표인지 귀를 쫑긋하던 사람들은 충격적인 선언을 접하게 된다. "유다와 베냐민 모든 사람들이 삼 일 내에 예루살렘에 모이니 때는 아홉째 달 이십일이라 무리가 하나님의 성전 앞 광장에 앉아서 이 일과 큰 비 때문에 떨고 있더니, 제사장 에스라가 일어나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범죄하여 이방 여자를 아내로 삼아 이스라엘의 죄를 더하게 하였으니 , 이제 너희 조상들의 하나님 앞에서 죄를 자복하고 그의 뜻대로 행하여 그 지방 사람들과 이방 여인을 끊어 버리라 하니"(에스라 9장) 이방여자와 결혼한 사람은 당장 이혼을 하라는 선언이다. 이때부터 유태인은 혈통의 순수성을 주장하며 이방인과의 결혼을 죄악시 한다. 그 이전에는, 심지어 솔로몬도 이방 여인을 아내로 삼기도 하는 등 문제가 된 적이 없었다. 혈통의 순수성과 혈통계보는 보통 지배층에서 더 따지는 경향이 있는데, 이 시기부터 혈통은 유태교의 중심에 위치하게 된다. 신약 성경에도 예수의 다윗혈통과 아브라함 혈통을 증명하는데에 커다란 지면을 할애한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아내가 유대인이 아니면 모두 당장 이혼을 하라는 것은 참 과격하며, 이혼 후에 그 수 만큼 결혼 안한 유대인 여자가 있어서 재혼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닐터이다. 가족을 이룬 사람들은 어떻게 하는가. 페르시아 왕의 명을 받아 유대를 재건하라고 했더니 에스라 라는 원리주의자가 나타난 것이다. 어떤 사람들이 더 힘들었을까? 고향에서 쫓겨나는 것은 주로 지배층이다. 앗시리아나 바빌로니아가 지역을 장악하기 위해 지배층을 바빌로니아로 보냈던 것이다. 유다 지역에서 쫓겨났던 귀족들은 현지에 살던 서민층보다 자신의 혈통을 더 엄격하게 유지했고, 기록을 유지했을 것이다. 반면 서민들은 그리 엄격히 유지하지 않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특히 북쪽 지방은 앗시리아에 기원전 722년에 함락당한 후 이민족과 결혼이 더 많을 수 밖에 없었는데, 에즈라는 혈통이 순수하지 않으면 참여할 수 없다고 선언한 것이다. 느헤미야서의 곳곳에 사마리아(Samaria) 지역의 지도자 산발랏(Sanballat)과 암몬(Ammon)지역의 토비아스(Tobias)와의 마찰이 나타나는데, 그들은 느헤미야의 예루살렘 성전 건축을 반대하였다. 자신들도 요셉의 뿌리를 가진 이스라엘 사람인데 성전 건축에 참여하지 못하게 된 북쪽지방(사마리아) 사람들은 후에 산발랏의 손자인 산발랏III세때에 그리심산에 성전을 세운다. 이 지역의 중심 도시는 Shechem이다. 사마리아 그리심 산의 성전 최고 성직자가, 예루살렘 성전의 최고 성직자의 친동생이었던 것으로 보아, 같은 신을 같은 방식으로 섬겼던 것이 분명하다. 사마리아와 유대는 이처럼 서로 같은 신을 섬기고, 혈연으로나 역사로나 깊이 연관되어있다. 하지만, 비슷한 사람끼리 더 심하게 미워할 수도 있는 법. 유대인은 사마리아인을 역사 내내 미워하고 싫어하였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니라" 이 이야기에서 성직자가 돌보지 않은 다친 사람을 돌본 사람이 다름 아닌 사마리아인인 것은 그만큼 큰 반전을 기대해서이다. 그만큼 사마리아인에 대한 이미지가 안좋았다는 분위기를 반증한다. 그리고 이 이야기에는 유대 율법의 부정함/정결에 대한 배경이 숨어있다. 제사장과 레위인은 유태 율법에 따라 시체를 만지면 예루살렘 성전에서 의식 일을 할 수 없게 된다. 길거리 한쪽에 쓰러진 사람은 시체처럼 보였을 수 있다. 가까이 가지 않았으므로 살았나 죽었나 알지 못했겠지만, 만약 죽은 사람이었다면 이미 접촉을 했으므로 예루살렘 성전의 희생제식 등을 수행하지 못하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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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 지 노의 선봉장~!!
ㅂ ㅏㅋ ㅏㄹ ㅏ~..
by 김혜수 at 11/08 완벽하게 쓰여진 텍스트 by 고추 커지는 at 09/07 만다린은 현대 중국어로 만다런의 광동.. by comocho at 01/12 ㅗㅗㅗㅗㅗㅗㅗㅗㅗㅗㅗㅗ hhhhhhh.. by 2333 at 07/08 감사히 한 수 배우고 갑니다~ by 소심한 설인 at 04/05 이글루 파인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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