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06월 19일
Pixel XL이 DSLR을 흉내내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
요즘에는 굳이 비싼 카메라를 사지 않아도 아웃포커싱을 포토샵 등 소프트웨어를 통해서 구현할 수 있다.

최근 나온 Pixel XL 폰은 인공지능 소프트웨어로 아웃포커싱을 구현한다고 한다. 사진을 보면 꽤 봐줄만 하다.

이건 어딘가 사기 아닌가? 한번 알아보자.

그런데, 우리는 왜 아웃포커싱 사진을 좋아하는 것일까? 얉은 심도를 가져서 뒤가 흐리고, 피사체가 또렷히 보이는 것은 그 자체로 미적인 쾌감이 있다.

이러한 선호는 우리 인간 뇌 구조와 연관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사실 우리 눈은 배경 뒷날림을 우리도 모르게 항상 한다. 기가막히게 아름다운 사람이 지나가면 배경이 다 날아가버린다. 며칠 굶다가 먹을 것을 보면 그 옆의 아름다운 사람은 보이지도 않는다. (나만 그런가) 운전을 할때, 책을 볼때 우리는 모든 시야의 모든 것에 동등하게 집중하지 않는다.

우리가 뒷배경이 날아간 아웃포커싱 사진을 좋아하는 것은, 특히 이러한 뇌의 집중 경험을 재현해주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우리 뇌의 이런 배경 뒷날림은 광학적인 것이 아니다. 인간의 안구의 크기 등을 보면, 눈 자체는 아웃포커싱을 물리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구조가 되지 못한다. 이것은 소프트웨어적인 것이다. 안구는 센서에게 모두 보내주지만, 전달 과정과 뇌의 프로세스 과정에서 집중하고 싶은 것만 또렷하게 해준다.

20세기에 이르러서 반쯤 우연히 사진에서 비슷한 효과를 내는 법을 발견했다. 커다란 구경의 렌즈를 사용하면 심도가 낮아져, 우리의 뇌가 주변을 흐릿하게 만드는 것과 비슷한 효과가 난다.

거꾸로 말하면, 아웃포커싱 사진은 뇌에서 소프트웨어적으로 만들던 배경흐림을 물리적인 방법을 사용해서 흉내내는 것이다.

아주 같지는 않다. 물리적인 뒷 배경 흐림은 순수히 광학적 법칙에 의해 좌우되지만, 인간 뇌의 뒷배경 흐림은 무엇에 관심을 두느냐에 좌우된다. 우리는 상대방의 두 눈과 아름다운 목선에 집중을 하고 귀걸이는 무시할 수 있지만, 물리적인 거리로만 흐림을 구현하는 카메라는 결과가 다를 것이다.

자, 그렇게 보면, 포토샵이나 Pixel카메라는 DSLR을 편법으로 흉내내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라고 말해야 하는 것 아닌가.
by 알밭 | 2018/06/19 12:54 | 잡담 | 트랙백 | 덧글(2)
2018년 06월 19일
[성경 이야기] 유대교의 부정함과 성스러움
유대교의 개념에서 거룩함(kodesh)과 정결함(tahor)이 자주 헷갈리는데, 이 둘은 연관은 된 것이지만, 다른 것이다.

졍결함(tahor, pure)의 반대는 정결하지 않음(tame, impurity)이다.
성스러움거룩함(kodesh, holy)의 반대는 성스럽지 않음이 아니라 일반적임(com, common)이다

Pure <---> Impurity
Holy <---> Common

Holy ⊃ Pure

이 개념을 잘 이해하면 구약성경에 자주나오고 성경에 나오는 사람들의 행동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또한, 이 정결 개념은 유대교에만 나오는 개념이 아니라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히타이트, 나중에 나올 이슬람 등에 널리 퍼진 개념이다.

_거룩함_:
유대교의 거룩함은 기독교 등에서 이야기하는 거룩함과 다르다. 유대교에서 거룩함(kodesh, holy)는 신과 관련된 물건/장소/시간 등을 뜻한다. 성스러운 날, 성스러운 교회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기독교에서는 수사적인 표현에 불과한 반면 고대 유대교에서는 구체적인 속성이다.

성스러움을 얻기 위해서는 우선 정결(tahor)해야한다. 하지만, 정결하지 않으면 (tame) 거룩함(kodesh)을 얻을 수 없다.

정결함은 청결과는 다르다. 정결함은 거룩함을 지니고 있는 성스러운(sacred) 장소, 성스러운 물건에 접근하거나 접촉할 수 있는 자격을 얻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따라서, 당연히 모든 거룩함을 가진 성스러운 물체는 정결하다.

만약 정결하지 않은 사람/물체가 성스러운 물체에 접촉을 하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성스러운 물체는 곧바로 정결하지 않게되며, 동시에 성스러움을 잃게 된다.

이 경우, 다시 성스러움을 얻으려면 두가지 단계를 거쳐야 한다. 먼저, 의식 등을 통해 정결해져야 한다. 정결해졌다고 해서 성스러운 것은 아직 아니다. 정결해진 후에, 신에게 봉헌 되거나 하는 의식을 거치면 성스러워지는 것이다.

성스러움은 다 같지 않으며 그 정도에 차이가 있다. 예루살렘은 성스러운 곳이고, 욤키푸르 일은 성스러운 날이며, 유대교 신이 머무르는 성소는 더더욱 성스러운 곳이며, 성소 내부의 장막 너머는 극히 성스러운 곳이다.

_정결_:
정결하지 않은 것은, 죄악이 아니며 일상에 존재하는 것이며 때로는 피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예를 들자면 성적인 접촉, 시체와의 접촉 등이다.

또한, 이 정결 율법을 진화나 위생 등으로 섣불리 합리화하려고 하면 안된다. 거슬러 올라가면 어딘가 그 이유가 있을지 몰라도, 많은 정결 관련 룰은 그 반대인 경우가 많다. 가령, 인간이나 동물의 배설물을 유대교에서는 정결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정결하지 않음 (impurity)이라는 말이 너무 길고 입에 붙지 않고, 부정결이라는 말도 어색하여, 정결하지 않음을 부정함이라고 여기부터 표기하기로 한다. 표준 한국어 표기법은 모르겠다. 여기서 부정함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것과 다른 유태교에서의 부정함을 뜻한다.)

부정함은 크게 제의적(ritual)인 부정과 도덕적(moral)부정로 나뉜다..

_정결 / 제의적 부정_
제의적 부정은 출산, 피부병, 집과 의복의 곰팡이, 성기에서 나온 물질, 부정한 동물 시체, 인간 사체 등이다. 또한, 제물을 바치는 의식에서 나온 것도 부정하게 여긴다.

제의적 부정은 접촉함으로서 옮는다. 때로는 시체가 들어간 텐트에 들어간 것 처럼 같은 지붕 밑, 등 가까이 가기만 해도 옮는다.

이는 자연의 일부이며, 섹스와 죽음 등은 오히려 피할 수 없는 것에 가깝다.

제의적인 부정은 죄악이 아니다. 다만, 유대교의 성스러움은 영원하고 무성적인 속성을 가져야 하기 때문에 섹스와 죽음과 접촉할 수 없는 것이다. 시체를 만진 사람은 부정 타지만, 죄를 짓는 것은 아니다.

제의적인 부정은 전염되는 특징이 있다. 또한, 일시적이다. 시체를 만지거나 하는 것은 하룻 동안 부정타고, 출산은 33일이나 66일동안 부정탄다. 각 부정에 따라 씻김 방법이 정해져있다. 목욕, 빨래, 일몰, 제사 등으로 해결할 수 있다. 대부분 부정은 중세 근세로 들어서면서 희석화되었지만, 여성의 월경을 부정하게 여기는 것은 이어져왔다.

돼지고기, 피부병, 시체 등 이런 제의적인 부정이 과학적 / 위생적 근거가 있는가? 20세기초반 학자들은 미개한 것으로 여겼었고, 20세기 중반 학자들은 위생 이유를 들이대며 이유가 있을 것이라며 설명하려 했다.

하지만, 위에 언급했다시피 배설물은 부정하지 않으며, 피부병 외에 다른 전염병의 부정함 언급이 없다. 돼지고기가 위생상 위험해서 부정하다면, 중동지방의 수많은 독성있는 식물은 왜 부정하지 않은가. 현대에는 유대교 부정함은 설명되는 것도 있지만 논리적이지 않은 것도 많아 굳이 설명하려 하지 않는다.

_정결 / 도덕적 부정_
자, 제의적 부정은 이정도로 끝내고 도덕적 부정을 알아보자.

도덕적 부정은 우상숭배, 수간, 살인 등이다. 이는 대부분 행동에 의해 저지러지며, 주로 사제적(Prestly)출처 문서에 언급된다.

도덕적 부정의 특징 7가지는
1) 제의적 부정은 죄악이 아님에 반해 도덕적 부정은 죄악이다.
2) 도덕적 부정은 또한 이스라엘 자체에 해가 된다.
3) 전염되지 않는다
4) 대부분 오래 혹은 영원히 지속되며, 벌을 받거나 죄진자가 된다.
5) 간단한 씻김 방법이 없다. 벌을 받거나 구원을 받아야 부정을 씻는다.
6) 성소에 들어갈 수 있다. 전염되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간음을 한 여자, 살인을 한 남자가 성소에 들어가서 참회를 한 기록이 있다.
7) 텍스트에 따라, 가증스러운(abomination) 오염된(pollute) 등으로 표현한다.

위의 이러한 복잡한 부정탐에 대한 정의는 사두개파, 바리새파 등 간의 논쟁으로 이어져 왔으며, 미쉬나에 기록되어있다. 쿤란의 사해 문서를 보면 굉장히 엄격한 제의적 부정함에 관련된 룰을 지켰던 것으로 보인다.

기독교는 제의적 부정함을 대부분 무시하고 도덕적 부정함 룰에 집중하는 경향을 보이고, 2차 성전 이후 랍비들은 제의적 부정함에 집중해 논의해였고 미쉬나의 대부분 내용이 이에 관한 것이다.

이런 부정함/성스러움의 개념을 이해하면 성경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많이 된다.
by 알밭 | 2018/06/19 11:39 | 성경 | 트랙백 | 덧글(0)
2018년 06월 15일
[성경이야기] 바빌론 유수로부터 귀환

기원전 586년, 바빌론 왕국은 예루살렘을 정복하고 솔로몬 성전을 파괴한다. 역사학자들은 이 시점을 까지를 제1 성전 시기라 부르며, 이 후를 바빌론 유수 시기로 부른다. 바빌론 유수는 538년 까지 이어졌고, 기원전 516년에 다시 예루살렘 성전을 지어서 이를 제2성전 시기라고 한다. 이 제2성전은 서기 70년에 로마군에 의해 파괴된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열아홉째 해 오월 칠일에 바벨론 왕의 신복 시위대장 느부사라단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을 불사르고 예루살렘의 모든 집을 귀인의 집까지 불살랐으며" (열왕기하 25장8절)

바빌론은 예루살렘을 점령해 왕궁과 성전, 그리고 귀족들의 집을 불사른다. 

당시 유다 왕 시드기야는 야밤을 틈 타 도망치려하다 잡혔다. 시드기야 왕은 눈을 뽑혀 장님이 된다. 바빌론은 시드기야의 눈을 뽑기 전에 눈 앞에서 아들들을 살해한다. 장님이 되기 전 마지막 세상 모습이 아들들이 죽는 모습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그들이 왕을 사로잡아 그를 립나에 있는 바벨론 왕에게로 끌고 가매 그들이 그를 심문하니라 그들이 시드기야의 아들들을 그의 눈앞에서 죽이고 시드기야의 두 눈을 빼고 놋 사슬로 그를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끌고 갔더라" (열왕기하 25장)

유대 사람들은 바빌론에 끌려가 생활을 하게 되는데, 이를 시편은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그 중의 버드나무에 우리가 우리의 수금을 걸었나니 이는 우리를 사로잡은 자가 거기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며 우리를 황폐하게 한 자가 기쁨을 청하고 자기들을 위하여 시온의 노래 중 하나를 노래하라 함이로다 . 우리가 이방 땅에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까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을진대 내 오른손이 그의 재주를 잊을지로다" (시편 137) 

설움에 찬 시편137편과 달리 예레미야서는 이런 구절이 있다.

"유다의 왕 시드기야가 바벨론으로 보내어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에게로 가게 한 사반의 아들 엘라사와 힐기야의 아들 그마랴 편으로 말하되
,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가게 한 모든 포로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는 집을 짓고 거기에 살며 텃밭을 만들고 그 열매를 먹으라, 아내를 맞이하여 자녀를 낳으며 너희 아들이 아내를 맞이하며 너희 딸이 남편을 맞아 그들로 자녀를 낳게 하여 너희가 거기에서 번성하고 줄어들지 아니하게 하라." (예레미야 29장)

선지자 예레미아가 현지에서 정착을 하고 행복하게 현지인과 결혼을 하며 생활을 하라고 권한 것이다. 실제로 많은 유태인들은 당시 풍요롭던 바빌론의 생활을 누리고 집을 장만하기도 하고 현지인과 결혼하며 자식을 낳고 살았다. 

하지만, 현지화가 되어가면서도 유대인으로의 정체성을 잃지 않았고, 이스라엘의 신을 계속 섬겼다. 이것은 바빌론 유태인 장로들에 의해 유지되었고, 모세5경과 여호수아, 사사기 등이 완성된 것도 이 시기로 추정된다. 

신이 어느 곳에나 계신다는 기독교와 달리, 유태교는 신이 특정한 물리적 장소에 존재한다고 믿어 그 곳에서만 제사 등을 지냈는데, 그곳이 예루살렘 성전의 성소이다. 유태인은 종교 의식을 계속하기 위해서 성전이 필요한데, 이미 성전은 무너졌고, 사는 곳은 바빌론이 되어버린 문제에 직면했다. 그러한 현실에 적응하기 위해서 유태교 회당(시나고그)의 개념이 이때 생긴 것으로 추정된다.

기원전 7세기부터 6세기부터 중동지역을 장악하던 바빌론 제국은 페르시아의 강성함에 점차 쇠락하며 영토를 내어주기 시작한다. 5세기에 접어들자 바빌론 지역을 포함한 터키, 러시아 서쪽, 그리스, 이집트까지 포괄하는 페르시아 왕국이 설립이된다. 페르시아와 그리스의 전쟁이 일어난 것도 이 시기이다. 

(페르시아는 개역개정등의 성경에서 '바샤'라고 불리운다.)

지역의 새로운 주인이 된 페르시아는 바빌로니아와 정반대의 이주정책을 펼쳤는데, 강제 유배된 이주민이, 원하면 원지방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전통적으로 앗시리아와 바빌로니아는 다스리기 쉽게 하려고 지배층을 다른 곳으로 유배시켜 지역지배층을 와해했다. 페르시아는 다스리기 쉽게 하려고 지역 지배층에 대한 유화정책으로 고향으로 돌아가게 한 것이다. 둘 다 목적은 같다. 페르시아의 이 정책은 효과적이었던 것 같다. 페르시아 지배기간동안 반란은 단 한번 밖에 없었으며, 이것은 그리스인들 한 것인데, 이것 조차 페르시아 밖 그리스인들에 의해 조장된 것이었다. 

기원전 530년에 페르시아의 사이러스 대왕은 유태인들에게 고향으로 돌아가고, 성전언덕에 성전을 다시 지으라고 허락한 조서를 내린다. 

(사이러스Cyrus는 대부분 한글 성경에서 '고레스'라고 표기된다. 또한, 원어표기법에 따라 '키루스'가 표준한글에 맞는 표기인데 사이러스 대왕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이르되, 바사 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세상 모든 나라를 내게 주셨고 나에게 명령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참 신이시라 너희 중에 그의 백성 된 자는 다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라 그는 예루살렘에 계신 하나님이시라. 그 남아 있는 백성이 어느 곳에 머물러 살든지 그 곳 사람들이 마땅히 은과 금과 그 밖의 물건과 짐승으로 도와 주고 그 외에도 예루살렘에 세울 하나님의 성전을 위하여 예물을 기쁘게 드릴지니라 하였더라
사로잡혀 간 백성이 돌아오다." (에스라 1장)

이를 증명하는 실제 역사자료가 있다. 원통형 진흙 기둥에 쐐기문자로 씌여있는 키루스 2세 실린더가 그것이다. 사이루스 대왕이 바빌론에 있는 '여러민족'들에게 자신의 고향 땅에 돌아가 살수 있도록 명령한 것이다. 대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https://en.wikipedia.org/wiki/Cyrus_Cylinder

실제 사료와 성경 버전의 차이가 흥미롭다. 실제 사료는 여러 민족에게 명한 것인데, 성경에서는 사이러스 대왕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특별히 찬양하며 하나님에게 감동을 받아 유태인에게만 특별히 한 것 처럼 묘사된다.

사이러드 대왕의 조서를 들여다보자.
"나 사이러스는 세상의 왕이며...성전이 폐허가 된지 오래 된 티그리스 강의 저편까지, 나는 그곳에 살던 신들을 고향으로 돌아가게 하며 성전을 제공하였다. 그 신들의 백성들도 모아 고향으로 돌아가게 하였다. 
성스러운 곳으로 돌아가게 한 신들 모두, 매일매일 내가 만수무강 하며 내 복을 '벨'과 '니보' 앞에서 기원하기를'
(벨과 니보는 페르시아의 신이다.)

내가 신을 고향으로 돌아가게 했으니 그 신이 나를 도와줄 차례, 라는 식의 동기가 재미있다.

페르시아의 광활한 영토는 몇개의 권역으로 나뉘었는데, 이는 Satrapies라 한다. 예루살렘이 속해있던 권역의 이름은 Eber-nari 인데, "강건너 땅" 이라는 뜻이다. 페르시아는 이란에서 기원하였으므로 이스라엘쪽은 티그레스 강 건너편인 것이다.

이 Satrapies는 주(洲)의 개념인 medinot(단수 medina) 이 있는데, Eber-nari 권역에는 유다, 사마리아, 이두메아, 암몬 등이 있었다. 익숙하게 들릴 이 이름들은 페르시아 행정구역 시기에 확실히 나뉜 것으로 이때 고착되어 이후에도 계속 쓰이게 된다. 

유다(Judah) 혹은 야후드(Yahud), 주디아( Judia)로 불리는 지역은 우리가 익숙한 신약 성서의 무대가 되는 곳으로,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한 지역이다. 

사마리아(Samaria)는 그 북쪽에 위치하며, 사마리아 중심에는 같은 이름의 사마리아 라는 도시가 있다. 원래 제1성전 시기에 이스라엘의 수도였던 도시 이름을 따서 지역 이름이 나온 것이다. 같은 이름이 이제는 지역 이름으로 쓰이니 헷갈리지 말자. 

이두메아 Idumaea는 유다의 남쪽에 위치한다. 이 지역 사람들은 원래 사해(死海) 남동쪽은 Edom 지역 주민들이 넘어온 것이다. 

암몬(Ammon)은 유다에서 북동쪽으로 사해를 넘어가서 위치한다. 이 지역은 유태인 왕족의 하나인 Tobias가 다스리는 곳이다.

유다 지역을 다스리기 위해 페르시아에서 보내진 사람은 유태인으로서 페르시아에 고위직이었던 '느헤미아'이다. 성경 느헤미야서는 이 과정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왕에게 아뢰되 왕이 만일 좋게 여기시고 종이 왕의 목전에서 은혜를 얻었사오면 나를 유다 땅 나의 조상들의 묘실이 있는 성읍에 보내어 그 성을 건축하게 하옵소서 하였는데" (느헤미야 2장)

실제로 이때 지어진 5세기의 예루살렘은 고고학적 증거에 의하면 상당히 작은데, 이는 대부분 페르시아에 정착한 유대인들이 느헤미야를 따라 고향으로 돌아와서 다시 바닥부터 시작하기 보다는 페르시아 삶을 계속 하기를 원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페르시아 정부는 유대지역에 유대 율법을 확립을 돕도록, 기록요원이며 모세5경에 정통한 '에스라' 라는 사람도 보낸다. 

바빌론으로부터 돌아온 사람들이 옛 성전을 다시 지어 이스라엘을 재건하던 시기부터 혈통과 정통성을 따지기 시작한다.

이전까지 12부족의 연맹체였던 종교가, '에스라' 사람에 의해서 초기 '유대교'로 탈바꿈하게 된다. 이는 '유대' 지역에 바빌론 유수로부터 돌아온 '유대' 부족 사람들의 종교라는 것이다. 기원전 586년 이전의 이 지역의 종교(이스라엘 지역종교)와 이후의 종교(유대지역 종교)의 차이를 유념해두자.

갑자기 족보가 얼마나 강조되었는지는 에스라 8장에 잘 나타나있다.

"아닥사스다 왕이 왕위에 있을 때에 나와 함께 바벨론에서 올라온 족장들과 그들의 계보는 이러하니라..." (에스라 8장)

에스라는 사람들을 모두 광장에 모이게 한다. 마침 비가 내려, 비를 맞고 떨면서 무슨 발표인지 귀를 쫑긋하던 사람들은 충격적인 선언을 접하게 된다.

"유다와 베냐민 모든 사람들이 삼 일 내에 예루살렘에 모이니 때는 아홉째 달 이십일이라 무리가 하나님의 성전 앞 광장에 앉아서 이 일과 큰 비 때문에 떨고 있더니, 제사장 에스라가 일어나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범죄하여 이방 여자를 아내로 삼아 이스라엘의 죄를 더하게 하였으니 , 이제 너희 조상들의 하나님 앞에서 죄를 자복하고 그의 뜻대로 행하여 그 지방 사람들과 이방 여인을 끊어 버리라 하니"(에스라 9장)

이방여자와 결혼한 사람은 당장 이혼을 하라는 선언이다.

이때부터 유태인은 혈통의 순수성을 주장하며 이방인과의 결혼을 죄악시 한다. 그 이전에는, 심지어 솔로몬도 이방 여인을 아내로 삼기도 하는 등 문제가 된 적이 없었다. 혈통의 순수성과 혈통계보는 보통 지배층에서 더 따지는 경향이 있는데, 이 시기부터 혈통은 유태교의 중심에 위치하게 된다. 신약 성경에도 예수의 다윗혈통과 아브라함 혈통을 증명하는데에 커다란 지면을 할애한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아내가 유대인이 아니면 모두 당장 이혼을 하라는 것은 참 과격하며, 이혼 후에 그 수 만큼 결혼 안한 유대인 여자가 있어서 재혼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닐터이다. 가족을 이룬 사람들은 어떻게 하는가. 페르시아 왕의 명을 받아 유대를 재건하라고 했더니 에스라 라는 원리주의자가 나타난 것이다.

어떤 사람들이 더 힘들었을까? 고향에서 쫓겨나는 것은 주로 지배층이다. 앗시리아나 바빌로니아가 지역을 장악하기 위해 지배층을 바빌로니아로 보냈던 것이다. 유다 지역에서 쫓겨났던 귀족들은 현지에 살던 서민층보다 자신의 혈통을 더 엄격하게 유지했고, 기록을 유지했을 것이다. 반면 서민들은 그리 엄격히 유지하지 않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특히 북쪽 지방은 앗시리아에 기원전 722년에 함락당한 후 이민족과 결혼이 더 많을 수 밖에 없었는데, 에즈라는 혈통이 순수하지 않으면 참여할 수 없다고 선언한 것이다. 

느헤미야서의 곳곳에 사마리아(Samaria) 지역의 지도자 산발랏(Sanballat)과 암몬(Ammon)지역의 토비아스(Tobias)와의 마찰이 나타나는데, 그들은 느헤미야의 예루살렘 성전 건축을 반대하였다. 

자신들도 요셉의 뿌리를 가진 이스라엘 사람인데 성전 건축에 참여하지 못하게 된 북쪽지방(사마리아) 사람들은 후에 산발랏의 손자인 산발랏III세때에 그리심산에 성전을 세운다. 이 지역의 중심 도시는 Shechem이다. 

사마리아 그리심 산의 성전 최고 성직자가, 예루살렘 성전의 최고 성직자의 친동생이었던 것으로 보아, 같은 신을 같은 방식으로 섬겼던 것이 분명하다. 

사마리아와 유대는 이처럼 서로 같은 신을 섬기고, 혈연으로나 역사로나 깊이 연관되어있다. 하지만, 비슷한 사람끼리 더 심하게 미워할 수도 있는 법. 유대인은 사마리아인을 역사 내내 미워하고 싫어하였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니라"
(누가복음 10장 31)

이 이야기에서 성직자가 돌보지 않은 다친 사람을 돌본 사람이 다름 아닌 사마리아인인 것은 그만큼 큰 반전을 기대해서이다. 그만큼 사마리아인에 대한 이미지가 안좋았다는 분위기를 반증한다. 

그리고 이 이야기에는 유대 율법의 부정함/정결에 대한 배경이 숨어있다. 제사장과 레위인은 유태 율법에 따라 시체를 만지면 예루살렘 성전에서 의식 일을 할 수 없게 된다. 길거리 한쪽에 쓰러진 사람은 시체처럼 보였을 수 있다. 가까이 가지 않았으므로 살았나 죽었나 알지 못했겠지만, 만약 죽은 사람이었다면 이미 접촉을 했으므로 예루살렘 성전의 희생제식 등을 수행하지 못하게 된다.

by 알밭 | 2018/06/15 23:57 | 트랙백 | 덧글(0)
2018년 03월 11일
한글 탭코드

모르스 장비가 없이 위기상황에서 쓸 수 있는 한글 탭 코드를 생각해봤다.

가령, '안녕'은 (3,3), (1,2), (1,1), (1,4), (1,4), (1,1), (1,1), (1,2), (3,3) 으로 책상 등을 두드리면 된다. 모르스코드는 긴소리와 짧은 소리의 구분이 있어서 두드리는 소리만으로는 알아듣기 어려운데, 탭코드는 이러한 상황에서도 쓸 수 있다. 영어 탭코드는 있는데, 한글은 못 본것 같다. 천지인을 도용하면 쉽게 4x4로 가능하다.



탭코드는 감옥 등에서 많이 쓰인다고 한다.

by 알밭 | 2018/03/11 00:40 | 트랙백 | 덧글(0)
2017년 11월 22일
영국의 선물
영국이 세상에 선물한 것 중 하나는 잔디이다. 저주일 수 있겠다.

2009년 기준 미국은 1000억원을 잔디에 쏟아부었다고 한다. 전세계적으로는 수조원이 잔디 가꾸기에 소모된다고 추산된다. 하지만, 정작 영국은 그다지 잔디에 돈을 쓰지 않는 듯 하다.

영국에서는 그냥 놔두면 잔디가 자란다. 가끔 깎아주기만 하면 된다. 영국에는 잔디보호 푯말이 없다.

우리나라에서 잔디는 겨울이면 얼어서 다 죽어버린다. 여름이면 더위를 견뎌내야하고, 강수량은 너무 적거나, 반대로 너무 많다. 혹독한 환경의 대부분 나라들은 잔디보호 푯말이 있다.

영국은 강수량도 그다지 많지 않고, 일조량도 적어서 큰 나무가 자라기보다는 작은 풀, 가령 잔디가 자라기 적합한 기후이다. 겨울에도 거의 영하로 떨어지지 않아 푸른 잔디를 겨울내내 볼 수 있다. (항상 추운듯 안추운듯 으슬으슬하다.) 인클로저 영향도

영국에서 잔디는 들어가서 놀고 굴러다니라고 있는 곳이다.

미국 동부로 이주한 영국인들은 그곳에서도 잔디 마당을 그대로 가지고 싶어했고, 나중에 서부 사막지대에 진출한 후에도 잔디를 버리지 모했다. 영국산 잔디가 자라지 않자, 여러 곳의 비슷한 풀을 수소문 해 독일산 잔디를 이용해 품종 개량을 한다. 우리가 익숙하게 알듯 잔디에 물을 주는 것이 미국의 흔한 풍경이다. (영국에서는 보기 드물다.)

영국이 세계에 선물한 또 하나는 스포츠이다. 물론, 전세계 대부분 문화가 스포츠를 수천년 넘게 하고 있었지만, 이를 순화시키고 규칙을 만들어서 점수를 기록하여 승부를 가리는 것을 본격화 한 것은 영국인들이다.

이 스포츠를 몇개 열거해보자면 축구, 잔디 보울링, 필드 하키, 크리켓, 럭비, 골프 등이 있다. 이들을 거슬러 올라가보자면 몇천년을 갈 수 있지만, 점수와 룰과 구장을 규정하는 현대적인 스포츠는 영국인들이 대부분 만든 것이다. (잔디 보울링은 나중에 현재 실내 보울링이 되고, 필드하키는 아이스하키에 영향을 준다. 크리켓은 후에 야구가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영국이 플레이하는 장소 조건도 규정했다는 점이다. 공통점을 발견했는가? 이 스포츠들의 특징은 모두 잔디에서 플레이한다는 것이다. 왜냐면, 영국인들에게는 동네 공터가 잔디공터이니까.

만약, 영국이 사막 국가였다면 우리가 축구와 야구를 모래구장에서 하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누가 아는가.
by 알밭 | 2017/11/22 01:54 | 영국생활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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